주유소 가격표가 두 달째 내려가고 있습니다.

7월 넷째 주 전국 평균 휘발유값이 리터당 1,872원. 5월 중순 2,011원에서 139원이 빠졌어요.

그런데 6월 소비자물가는 3.2%로 올해 가장 높았습니다. 한국은행은 7월 16일 기준금리를 올렸고요.

기름값이 내려가는데 물가가 오르고 금리까지 오릅니다. 순서가 거꾸로인 것 같죠.

거꾸로가 아닙니다. 기름값이 물가로 도착하는 데는 시간이 걸리고, 그 시간이 1년을 넘습니다.

주유소에서 내는 돈은 그 달에 끝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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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름값은 왜 지금 내려가고 있을까요

올해 3월, 두바이유가 배럴당 169달러까지 올랐습니다. 2008년 최고치를 넘어선 사상 최고값이에요.

중동 정세로 호르무즈 해협이 사실상 막힌 게 방아쇠였습니다. 세계 석유 소비의 5분의 1이 지나는 길목이고, 그 원유의 대부분이 아시아로 옵니다. 우리가 사 오는 중동산 원유의 가격 기준이 정확히 두바이유죠.

왜 우리가 그대로 맞을까요. 2025년 한국이 들여온 원유의 68.3%가 중동 5개국산입니다. 사우디아라비아 한 나라에서만 33.6%가 왔어요.

우리가 들여오는 원유의 3분의 2가 중동 5개국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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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원유 수입의 3분의 2가 중동 5개국
항목 설명
중동 5개국 사우디 33.6%가 최다 68.3%
미국 관세 면제로 늘었다 17.0%
그 외 브라질·멕시코 등 14.7%

바꿀 수 없어서 못 바꾸는 게 아닙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이 꼽은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중동 항로의 수송단가가 배럴당 1.87달러로 미국산 3.93달러의 절반 아래라는 것, 그리고 국내 정유설비가 애초에 중동산 중질·고황 원유를 처리하도록 지어졌다는 것이죠.

7월 29일에는 79.9달러였습니다.

두바이유는 3월 정점에서 크게 내려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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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바이유 배럴당 월평균 가격
시점 두바이유
1월 62.0달러
2월 68.4달러
3월 128.5달러
4월 105.7달러
5월 103.2달러
6월 79.5달러
7월 76.3달러

그러면 주유소는 왜 이제야 내려갈까요. 국제 시장에서 산 원유가 정제와 유통을 거쳐 주유소 가격표에 붙는 데 보통 2~3주가 걸리기 때문입니다. 지금 여러분이 보는 가격은 6월 하순에 급락한 유가예요.

정부도 두 겹으로 누르고 있습니다. 유류세 인하가 9월 30일까지 연장됐고, 3월부터는 정유사가 주유소에 넘기는 값에 상한을 두는 석유제품 최고가격제가 돌아가고 있어요. 8차 상한은 휘발유 리터당 1,784원입니다.

한국개발연구원은 1차 최고가격제가 3월 소비자물가를 0.4~0.8%포인트 낮춘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4월부터 반영되는 유류세 추가 인하 효과는 0.2%포인트로 전망했고요.

바꿔 말하면 지금 주유소 가격표는 유가만으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정책이 함께 눌러 놓은 값이죠.

지금 주유소 가격은 정책이 함께 누른 값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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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유소 가격표를 만든 세 숫자
항목 설명
7월 4주 휘발유 1,872원 리터당 전국 평균
5월 고점 대비 139원 리터당 하락
공급가 상한 1,784원 8차 동결값

그리고 국제유가는 7월 중순부터 다시 올랐습니다. 홍해에서 유조선이 공격받았다는 보도가 나온 7월 23일, 브렌트유가 두 달 만에 100달러를 넘었습니다. 직접 확인하지는 못한 사건이라 보도를 전하는 선까지만 말씀드립니다.

바다 위 항로 한 곳이 막히면 국제 시세가 먼저 움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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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해 보면 지금 주유소 가격은 지나간 유가입니다. 7월 하순에 오른 몫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어요.

물가와 근원물가가 벌어진 자리엔, 기름값이 있습니다

6월 석유류 가격이 1년 전보다 24.7% 올랐습니다. 경유가 33.7%, 휘발유가 23.1%입니다.

이 한 묶음이 6월 물가 상승률 3.2% 가운데 0.93%포인트를 담당했습니다. 대략 3분의 1이죠.

더 중요한 건 옆에 있는 숫자입니다. 기름값과 식료품처럼 들썩이는 품목을 뺀 근원물가는 1월 2.0%에서 6월 2.5%로, 0.5%포인트만 움직였습니다.

소비자물가만 올라가고 근원물가는 완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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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품목을 빼면 선이 갈린다
시점 소비자물가 근원물가
1월 2.0% 2.0%
2월 2.0% 2.3%
3월 2.2% 2.2%
4월 2.6% 2.2%
5월 3.1% 2.5%
6월 3.2% 2.5%

1월에는 두 선이 같은 자리에 있었습니다. 6월에는 0.7%포인트가 벌어졌습니다.

바꿔 말하면 이번에 물가 상승폭이 벌어진 자리는 경제 전반이 아니라 기름값 쪽이었습니다. 이게 왜 중요한지는 잠시 뒤에 나옵니다.

여기서 차로 출퇴근하는 서른일곱 살 회사원 한 명을 세워 두겠습니다. 3월에 기름값이 뛰자 주유비가 눈에 띄게 늘었고, 7월에는 다시 줄었습니다. 이 사람 입장에서 유가 사태는 이미 끝난 일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왜 지난번엔 유가가 내려간 뒤에 물가 압력이 더 커졌을까요

한국은행 조사국이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때를 실제로 재 봤습니다.

유가가 급등한 2022년 1월부터 7월까지, 소비자물가는 평균 4.9% 올랐습니다. 그 가운데 유가의 직접효과가 1.1%포인트, 간접효과가 0.9%포인트였습니다.

직접효과는 주유소·등유처럼 기름 자체의 값입니다. 간접효과는 그 기름값이 수송비·전기료·플라스틱 원가를 타고 다른 물건값으로 번지는 몫입니다.

기름값은 수송비를 타고 다른 물건값으로 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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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다음이 이 글의 핵심입니다.

유가가 하락한 2022년 8월부터 2023년 7월까지, 직접효과는 크게 약해졌습니다. 그런데 간접효과는 이전보다 오히려 확대됐어요. 그 기간 소비자물가 상승률 평균의 약 5분의 1이 에너지 간접효과였습니다.

유가가 내려간 뒤에 간접효과가 더 커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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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름값이 내려간 뒤에 압력이 커졌다
유가 국면 직접효과 간접효과
급등기 1.1%p 0.9%p
하락기 크게 약화 오히려 확대

시차도 함께 쟀습니다. 국제유가와 공업제품·전기가스수도·서비스 가격 상승률의 상관관계는 14~18개월 시차에서 가장 높았어요. 여기서 서비스는 외식을 뺀 나머지입니다. 유가가 앞서고 물건값이 뒤따르는 구조죠.

여러분 지갑으로 치면 이런 겁니다. 지난번엔 주유소에서 낸 돈은 그 달에 끝났지만, 그 기름값이 얹힌 택배비·전기요금·물건값은 1년 반쯤 뒤에 청구서로 왔어요.

기름값이 물건값으로 도착하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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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름값이 물건값이 되는 길
단계 내용 설명
1단계 기름값 상승 3월 급등
2단계 수송·원가 바로 반영
3단계 공산품·전기가스 14~18개월
4단계 근원물가 하반기 경고

물론 유가 하나로 1년 뒤 물가가 다 정해진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환율·임금·농산물도 함께 움직이니까요. 이 분해도 한국은행이 모형으로 추정한 값이고요. 다만 유가가 내려간 뒤에 압력이 커졌다는 건, 지난번 사이클을 한국은행이 되짚어 분석한 결과입니다.

아까 그 서른일곱 살 회사원에게 이 이야기는 이렇게 번역됩니다. 3월에 늘어난 주유비는 이미 지갑을 지나갔고, 3월의 기름값이 붙은 물건값은 아직 오지 않았다는 거죠.

그래서 한국은행은 지금의 기름값이 아니라 1년 뒤 물건값까지 보고 올렸습니다

한국은행은 원래 기름값 때문에 금리를 올리지 않습니다. 이 원칙을 문서로 공개해 두기까지 했습니다.

4월 10일 총재 기자간담회에서 나온 말입니다.

공급충격에 대한 통화정책 운영의 기본 원칙은 명확합니다. 충격이 일시적일 경우에는 정책 시차 등을 고려할 때 금리 조정으로 대응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반면 그 충격이 장기화되면서 물가상승 압력이 확산되고 기대인플레이션이 불안정해질 경우에는 정책적 대응이 필요합니다.

그날 기준금리는 2.50%로 동결됐습니다.

두 문장이 조건을 나눠 놓았죠. 일시적이면 안 움직인다. 번지면 움직인다.

그리고 6월 17일, 한국은행은 하반기 이후 유가 충격이 석유류 이외 근원물가 품목으로 파급될 것이라고 썼습니다. 앞 절에서 본 간접효과가 정책 문서에 경고로 올라온 겁니다.

7월 16일, 금리가 2.75%로 올랐습니다. 금통위원 7명이 모두 찬성했습니다.

원칙을 밝히고 경고하고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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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은 순서대로 움직였다
시점 사건 설명
4월 10일 원칙 선언 일시적이면 대응하지 않는다
6월 17일 경고 근원물가로 번질 것이다
7월 16일 기준금리 인상 연 2.50%에서 2.75%로

이 순서가 이 글의 답입니다. 한국은행이 유가에서 본 건 지금 싼 주유소 가격이 아니라, 1년 뒤 장바구니에 붙어 있을 3월의 기름값이었어요.

그럼 기름값이 계속 내려가면 금리도 내려가지 않을까요. 의결문은 반대로 적혀 있습니다. 금리인상 기조를 이어나갈 필요가 있다고요. 유가는 방아쇠였고, 지금은 수요 쪽 압력까지 함께 보고 있다는 뜻입니다.

기준금리가 올랐는데 내 대출금리는 왜 그전부터 오르고 있었는지는 따로 짚어 뒀습니다. → 기준금리 인상 — 내릴 땐 안 내려가던 내 대출금리, 오를 땐 왜 먼저 오를까요

먼저 겪은 나라들은 어떻게 됐을까요

기름 한 방울 안 나는 나라가 유가 급등을 만나는 일은 처음이 아닙니다. 두 번의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1974년 한국입니다. 1차 오일쇼크로 그해 소비자물가가 24.3% 올랐습니다. 원유 공시가격이 1년 만에 네 배가 됐으니까요.

그때 1년 만기 정기예금 금리는 15.0%였습니다. 1월에 12.6%에서 올린 값입니다.

물가 24.3%에 예금 15.0%. 은행에 돈을 넣어 둔 사람은 이자를 받고도 물가에 9%포인트 넘게 밀렸습니다. 게다가 대출금리를 충분히 못 올려서, 예금 15.0%에 대출 15.5%로 은행 스프레드가 0.5%포인트까지 좁아졌죠.

당시 물가를 잡을 만큼 금리를 올리지 못했고, 그 값은 예금한 사람이 치렀습니다.

도쿄 시부야 교차로 — 금리를 지키는 동안 값은 실질임금에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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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일본은 다른 길을 갔습니다. 일본은 에너지 자급률이 2022년도 기준 12.6%, 원유의 중동 의존도가 95.2%인 나라예요. 유가가 뛰고 엔화까지 약해져 이중으로 맞았습니다. 그해 무역적자가 20조 3,295억 엔으로 전년의 11.4배가 됐습니다.

그런데 일본은행은 금리를 올리지 않았습니다. 구로다 당시 총재가 그 이유를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나라는 자원 수입국이기 때문에, 최근의 국제적인 자원 가격 상승으로 해외로 소득이 유출되는 하방 압력을 받고 있습니다. … 이런 상황에서 금융긴축은 전혀 적절한 수단이 아닙니다.

논리는 단단합니다. 수입 물가가 올라 이미 소득이 빠져나가는데 금리까지 올리면 경기를 두 번 때리는 셈이죠.

대신 다른 곳에서 값이 나갔습니다. 명목임금은 올랐는데 물가가 그보다 더 뛰어서, 실질임금이 4년 내리 마이너스였어요.

명목은 올랐는데 실질은 4년 연속 마이너스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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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금리를 지켰고 실질임금은 깎였다
항목 설명
2021년 명목 +0.3% 0.6
2022년 명목 +2.0% -1.0
2023년 명목 +1.2% -2.5
2024년 명목 +2.8% -0.3
2025년 명목 +2.3% -1.3

오해하지 마세요. 일본은행이 틀렸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두 나라를 나란히 놓으면 다른 것이 보이거든요.

공급충격의 비용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청구서를 받는 사람만 달라집니다.

세 사례에서 값이 가는 자리가 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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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용은 사라지지 않고 이름만 바뀐다
사례 물가 대응 값이 가는 쪽
1974년 한국 올렸지만 못 미쳤다 예금한 사람
2022년 일본 금리를 안 올렸다 월급 받는 사람
2026년 한국 금리를 올렸다 빚이 있는 사람

2026년 한국은 금리를 올리는 쪽을 택했습니다. 그러면 청구서는 빚이 있는 사람에게 먼저 갑니다. 그리고 1년 반 뒤 물건값으로 나머지 몫이 모두에게 오죠.

그래서 우리는 무엇을 봐야 할까요

“기름값 내려갔으니 달러라도 사 두라”는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닙니다. 두 사례가 남긴 건 그런 조언이 아니에요.

청구서를 미리 아는 사람에게는 놀라움이 아니라 예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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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유가 뉴스를 주유소 가격표로 읽지 마세요. 지난번에 가장 뚜렷했던 시차가 14~18개월이었습니다. 기름값이 내려간 달은 안심해도 되는 달이 아니에요. 3월에 사상 최고를 찍은 유가가 아직 다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둘째, 내 지출에서 기름값을 타는 항목을 세어 보세요. 배달비·택배비·외식비·전기요금·난방비가 대표적입니다. 어느 항목이 물려 있는지 아는 것과 모르는 건 다릅니다. 알면 급하지 않은 지출을 예산 안에서 미루거나 나눠 쓸 여유가 생기니까요.

셋째, 이건 남의 문제가 아닙니다. 일본은 금리를 지켰지만 월급이 깎였고, 1974년 한국은 예금자가 물가에 밀렸어요. 내가 대출이 없어도, 금리로 눌러 잡지 못한 몫은 결국 물건값으로 모두에게 옵니다.

그리고 하나만 더. 지금 주유소 가격을 눌러 주고 있는 유류세 인하는 9월 30일까지입니다. 그 뒤가 어떻게 되는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의 한 달 지출에서 기름값을 타는 항목은 몇 개인가요? 배달비·택배비·외식비·전기요금 넷만 세어 봐도 대개 셋은 걸립니다.

관련해서 공식 물가와 체감 물가가 왜 이렇게 다른지, 그리고 원유를 달러로 사 오는 나라에서 환율이 월급을 어떻게 깎는지도 함께 보시면 그림이 이어집니다.

기름값 뉴스가 여태 주유소 이야기로만 보였다면, 이제 1년 뒤 내 장바구니 예고편으로 읽으셨으면 합니다. 청구서를 미리 아는 사람에게는 그게 놀라움이 아니라 예정이 되거든요.


본 글은 2026년 8월 2일 기준 정보·교육·참고용이며, 유가·물가 수치는 2026년 7월 말까지의 자료입니다. 유가·주유소 가격은 한국석유공사 오피넷 일별 자료(두바이유는 싱가포르 실물 현물 계열), 물가는 국가데이터처 2026년 6월 소비자물가동향(지수 기준연도 2020년·가중치 기준연도 2022년), 유가의 직접·간접효과와 시차는 한국은행 조사국 추정치이며, 정책 효과 수치는 한국개발연구원 추정치입니다. 홍해 유조선 피격 등 일부 사건은 보도로만 확인했습니다. 추정치는 기관·모형·시점에 따라 달라지고 앞으로의 물가·금리 경로를 확정하지 않으며, 특정 자산의 매수·매도나 환전·대출 시점을 권유하지 않습니다. 판단과 책임은 본인에게 있습니다.